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클리프 버튼 (문단 편집) == 사망 == 1986년 9월 27일 3집의 유럽 투어 중 스웨덴 스톡홀름에서의 공연을 마치고 이동하다 버스 전복 사고를 당해 24살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평소 [[커크 해밋]]의 침대를[* 미국은 버스 안에 침대가 설치된 투어버스를 타고 공연하러 다니는 경우가 흔하다.] 무척 탐내던 클리프는 사고 당일 제임스와 포커 내기를 하게 되고 내기에서 스페이드 에이스를 뽑아 제임스를 이기고 커크의 침대에서 잠이 드는데, 그 직후 버스가 미끄러져 뒤집어지는 사고가 난다. 커크의 자리에 있던 클리프는 멤버 중 유일하게 창문 밖으로 튕겨져 나가 버스에 깔려 어떻게 조치해볼 새도 없이 현장에서 즉사하며 사고의 유일한 희생자가 되었다. 당시 잠자리가 불편했던 제임스 또한 커크의 침대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짬 순서대로 하면 제임스가 커크의 침낭을 차지했어야 했으나 클리프가 이에 반대하며 카드내기를 제안했다고 한다.] 클리프의 사망 후 한동안 제대로 먹고 마시지도 못하고 반 폐인처럼 지냈다고 한다. 버스가 엎어진 이후 상황을 간단히 기록하면 이렇다. 버스가 한바탕 구르고 멤버들이 부리나케 팬티바람으로 버스를 탈출하는데, 제임스는 사람 수를 세다 한 사람이 모자라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시 후 버튼은 창문 밖으로 튕겨져 나가 굴러오는 버스에 그대로 깔린 채 발견되었다. 버스 기사는 이미 가망이 없는 버튼의 몸을 두르고 있는 담요를 잡아당기며 알 수 없는 행동을 했고, 버스 기사에 대한 분노와 이 행동에 자극받은 밴드 멤버들은 지금 뭘 하는 거냐며 버스 기사를 제지했다. 이어 제임스는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도하고 광분해 마구 소리를 지르며 버스기사에게 사고 원인을 추궁했다. 버스 기사는 [[블랙아이스|검은 얼음]][* 아스팔트 도로에 얕게 언 빙판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한국의 2019년 12월 14일의 고속도로 연속 추돌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을 밟고 미끄러진 것 같다고 했으며, 분을 삭이지 못한 제임스는 속옷바람으로 버스가 미끄러져온 길을 수백 미터 되돌아 걸어갔으나 어디에도 '검은 얼음'은 없었고, 버스기사에게서는 술 냄새가 났다고 한다. 이후 버스기사는 음주운전으로 인한 인명사고의 책임을 물고 실형을 살게 되었다. 사고 이후 멤버들 모두 쇼크 증세를 보였고 드러머 라스는 발목에 골절상을 입어 전원이 입원하게 된다. 3일쯤 후 모두 퇴원했고,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은 세 멤버는 호텔 방에서 끝없이 술만 마셔댔다고 한다. 커크 해밋이 회고하기를, 퇴원 후 묵은 호텔에서 며칠 지나지 않아 새벽 네 시에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잠을 깼는데, 제임스가 만취해 길바닥에서 '클리프, 어딨어!'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장례식에서는 공연에서 한 번도 연주되지 못했던 그의 마스터피스 Orion이 재생되었으며, 이 곡은 그대로 클리프의 추도곡으로 남아 2005년까지 20년간 한 번도 완곡으로 연주되지 못했다. 오직 89~92 라이브투어 중 잼 형식을 빌어 후반부 리프가 1분 남짓 연주되고 다음 곡으로 넘어가는 식으로 조금 연주되었을 뿐이었다. 후일 제임스가 회고한 바에 따르면 이 곡을 연주할 때면 클리프와 함께했던 행복한 기억들이 떠올라 눈물이 나기 때문에 아무래도 라이브로 연주하기 많이 꺼려졌었다고. 실제로 2006년 내한공연에서 연주된 영상이나 2012년 엔딩 크레딧으로 쓰인 Orion 연주 영상을 보면 내한공연에서는 제임스가 거의 카메라에 비춰지지 않고. 영화 엔딩 크레딧에서는 멤버 중 혼자서만 어두운 무대에서 짙은 스포츠 고글을 쓰고 연주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의 사망 이후 방과 연습실에서 나온 그의 연습노트와 테이프에 실린 베이스 리프를 모아 남은 멤버들이 재구성한 곡이 있는데, 이 곡이 4집에 실린 연주곡 To Live is to Die이다. 이 곡 역시 완곡으로 연주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가 2011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메탈리카 30주년 기념 파티에서 딱 한 번 연주되었다.[* 이 곡 역시 그동안 잼 형식으로 불려졌다. 레전드 라이브로 꼽히는 1989년 시애틀 라이브 Master Of Puppets를 연주하기 전에 베이스, 기타 멤버들이 모여 연주하는 것이 To Live is to Die이다. 그 외에 93년 라이브 등에선 그동안 메탈리카가 발매한 음반 중 연주곡들을 섞어 연주하기도 했다. Orion - To live Is To Die - The Call Of Kutulu 이런 식으로.] 클리프의 사망 이후 50여 명의 뮤지션들이 경합한 신규 베이시스트 채용 오디션에서 [[제이슨 뉴스테드]]가 낙점되었으며, 그의 환영식에 클리프 버튼의 양친이 참석해 제이슨을 격려했다. 그의 주검은 화장되어 샌프란시스코 만의 어느 곳에 뿌려졌으며, 사고가 일어난 현장에는 그를 기리는 비석이 세워졌고, 캘리포니아 카스트로 밸리의 고향에도 그를 기리는 작은 표지석이 남아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50px-Cliff_Burton_-_by_Fruggo.jpg|align=center]] 사고현장에 세워진 클리프 버튼의 추모비. 새겨진 글은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곡인 To Live Is to Die의 가사이다. [[파일:CliffAndDave1986.jpg|width=650&align=center]] [[데이브 머스테인]]은 자신과 함께 했던 메탈리카 멤버들(제임스, 라스)이 자신에게 클리프의 부고도 전하지 않았다고 크게 상심하였다. 다른 멤버들과 달리 클리프는 데이브 머스테인의 방출 이후에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간혹 교류를 가지기도 했다고 한다. 사진은 1986년 9월 메가데스의 Peace Sells 투어 현장에서 찍혔다. 클리프 시점 앞의 인물은 데이빗 엘렙슨, 대각선 오른쪽 인물은 크리스 폴랜드, 오른쪽은 데이브 머스테인, 왼쪽은 가 새뮤얼슨(1999 년 사망). 데이브 머스테인은 이후 메탈리카의 라스 울리히와 함께 지난 날의 갈등을 푸는 자리에서 '여기에 클리프도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말하며 그를 그리워하기도 했다. 정규음반 기준 원년멤버로서 고생만 죽도록 하고 돈이나 명예, 인기 같은 것은 누려보지도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망 5년 후 메탈리카 멤버들은 5집의 성공으로 억만장자가 되었는데, 3집 당시 메탈리카는 이제 막 오버그라운드에서 뜨기 시작한 밴드로서 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았다. 클리프의 사망 직전까지 메탈리카는 번 돈으로 장비를 사고 투어를 돌 자금을 대기도 빠듯하여 멤버들의 생활비나 조금 남기면 다행인 밴드였으며, 그의 생전에 메탈리카는 번듯한 수익분배 한 번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사망 당시까지 클리프는 부모와 함께 살았고, 언젠가 성공하면 집을 사 독립을 할 생각이었다고 한다.[[http://www.angelfire.com/rock3/metallica14/last_interview.html|#]] 사망 후 수십년이 지난 후까지도 메탈리카는 Orion 뿐 아니라 Fade to Black 등을 연주할 때도 “클리프, 우리 연주하는 거 듣고 있어?”라고 외칠 정도로 그를 여전히 기리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